빨강의 자서전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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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의 자서전

앤 카슨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25일 출간

헤라클레스에게 죽은 괴물이 쓰는 시로 된 소설

영웅이 아니라 화살 맞은 쪽에서

부제가 ‘시로 된 소설’입니다. 앤 카슨은 헤라클레스의 열 번째 과업에서 죽임을 당하는 빨강 괴물 게리온을 주인공 자리로 옮겨 놓았습니다. 고전학자인 작가가 많은 부분이 사라진 스테시코로스의 『게리오네이스』를 바탕 삼아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카슨이 그린 게리온에게는 어깨에 돋은 붉은 날개가 있습니다. 형의 학대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자기 내면을 기록할 자서전을 쓰기 시작하고, 코트 속에 날개를 숨긴 사춘기에 소년 헤라클레스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그리고 신화에서처럼 큰 상처를 입습니다.

작가는 게리온에게 끌린 까닭을 두고 “우리 모두 항상 자신이 괴물이라고 느끼니까요”라고 답했습니다. 그 말대로 남과 다른 몸과 숨겨야 할 비밀을 가진 소년의 이야기라, 신화를 몰라도 따라갈 입구가 있습니다.

앞뒤에 붙은 장치까지 작품입니다

본편 앞에는 스테시코로스를 다룬 글과 단편들, 부록 A·B·C가 나오고 뒤에는 저자와 스테시코로스의 인터뷰가 붙습니다. 실제와 허구가 섞인 이 틀이 고전학자 카슨만의 강점이자, 이 책이 낯설게 보이는 이유입니다. 어렵게 느껴지면 본편을 먼저 읽고 돌아와도 무방합니다.

번역은 유영번역상을 받은 민승남이 맡았고, 옮긴이의 말도 실려 있습니다. 형식이 낯선 책이라 이런 안내가 붙어 있는 편이 도움이 됩니다.

줄거리 위주로 읽는다면 어긋날 수 있습니다

사건이 빠르게 이어지는 소설을 찾는 독자에게는 맞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시 형식이라 문장 사이의 여백을 스스로 채워야 하고, 초반의 고전학 자료도 문턱이 됩니다. 어린 시절의 학대와 실연의 상처가 소재이니 그런 이야기를 피하고 싶은 때라면 미뤄 두어도 좋습니다.

이런 분이, 이런 상황에서 읽으면 좋습니다

  • 그리스 신화를 괴물의 눈으로 읽어 보고 싶을 때

    헤라클레스 영웅담을 희생된 쪽에서 다시 쓴 작품입니다. 익숙한 이야기가 누구의 입장에서 전해졌는지 되짚게 합니다.

  • 시집은 어렵고 장편은 부담스러운 시기에

    시의 언어를 쓰되 한 소년의 성장과 사랑이라는 줄거리가 있어 붙들 곳이 있습니다. 전체 256쪽으로 분량도 무겁지 않습니다.

  • 끝난 사랑을 아직 정리하지 못했을 때

    ‘실연의 철학자’라는 수식어를 작가에게 안긴 작품으로, 사랑에서의 가해와 피해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다만 위로를 건네기보다 상처를 직시하게 하는 쪽입니다.

읽고 나면 기대할 수 있는 것

  • 헤라클레스의 열 번째 과업과 고대 시인 스테시코로스의 존재를 이야기와 함께 알게 됩니다.
  • 시로 소설을 쓰는 형식이 어떻게 가능한지 하나의 사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남과 다르다는 감각과 괴물성을 자기 경험에 비추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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