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결혼 후의 사소한 싸움을 해부한 소설
한 문단으로 먼저 말하면
에든버러의 건축가 라비와 공무원 커스틴이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한쪽이 외도를 하고, 상담실에 앉기까지를 그린 소설입니다. 대단한 사건은 없습니다. 이케아에서 컵을 고르다 빈손으로 돌아오는 일이 가장 먼저 찾아오는 위기입니다.
이 글은 이 소설을 탓의 지도로 읽습니다. 다섯 부를 지나는 동안 우리 관계가 왜 이런가의 책임이 어디로 옮겨 가는지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탓할 것이 없고, 다음에는 상대 탓이고, 그다음에는 아이와 제도 탓입니다. 맨 끝에 가서야 그 화살의 방향 자체가 문제였음이 드러납니다.

소설인데 줄거리를 작가가 앞에서 다 말해 버린다면서요? 그럼 무슨 재미로 읽어요?

맞아요, 초반에 앞날을 거의 다 알려 줘요. 궁금증의 자리를 옮겨 놓은 거예요.

어디로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에서, 저 일이 왜 그렇게 누구 탓처럼 느껴지는가로요. 이게 드 보통의 수법이에요.
등장인물
- 라비레바논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건축가. 열두 살에 어머니를 잃었고, 영혼의 짝을 오래 꿈꿉니다.
- 커스틴에든버러 시청에서 일하는 건축 적산사. 일곱 살 때 아버지가 떠났고 어머니에게 깊이 충실합니다. 자기 몫을 혼자 해내려 합니다.
- 두 아이딸이 먼저, 그다음 아들. 3부에서 두 사람의 하루를 통째로 바꿉니다.
- 로렌라비가 출장지에서 만나는 젊은 여성. 4부를 여는 인물입니다.
드 보통은 인물과 줄거리를 일부러 평범하게 짭니다. 둘 다 한쪽 부모의 부재 속에 자랐다는 설정만이 뒤에 큰 몫을 합니다. 5부에 가서야 그 까닭이 풀립니다.
1부 낭만주의: 아직 탓할 것이 없는 때
라비는 십 대 시절부터 스쳐 지나간 사람에게 홀리곤 합니다. 런던에서 일자리를 잃고 에든버러로 와서 일 때문에 커스틴을 만납니다. 식당에 앉은 지 두 시간 만에 그는 이 사람과 남은 생을 보내고 싶다고 확신합니다.
해설자는 냉정합니다. 얼굴빛과 목의 기울기로는 사람의 속을 알 수 없다고 곁에서 일러 줍니다.
그러고는 곧이어 두 사람의 앞날을 미리 말해 버립니다. 결혼과 돈 걱정, 딸과 아들, 한 사람의 외도, 권태의 시간까지입니다. 그것이 진짜 러브스토리라고 합니다.
2부 그 후로 오래오래: 상대 탓의 시작
결혼 생활의 첫 전투는 이케아 유리컵입니다. 어떤 컵을 살지 합의하지 못해 빈손으로 돌아오며 두 사람은 처음 묻습니다. 이걸 평생 어떻게 견디지. 이 장의 웃음은 컵이 컵 문제가 아니라는 데서 나옵니다.

이어서 토라짐의 장이 나옵니다. 화가 났는데 왜 화났는지 말하지 않고, 상대가 알아내 주기를 기다리는 상태를 해부합니다. 작가는 여기서 믿음을 읽어 냅니다. 이 사람만큼은 말없이 알아주리라고 기대하기 때문에 토라진다는 것입니다.
섹스는 점점 뜸해지고 말하기 어려워집니다. 감정전이 장에서는 어린 시절에 배운 반응이 배우자에게 옮아오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모든 게 네 탓 장에 이릅니다. 영혼의 짝이 잘못된 인연으로 뒤집히는 시기입니다. 지혜로워 보이던 그녀가 차가워 보이고, 자상해 보이던 그가 자기 연민으로 보입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성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익혀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한두 가지 면에서 다소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쾌히 인정할 줄 아는 간헐적인 능력이다.p.116
3부 아이들: 지친 것이 사랑이 식은 것처럼 보일 때
결혼 4년쯤 뒤 딸이, 다시 몇 년 뒤 아들이 태어납니다. 3부의 첫 장 제목이 사랑의 가르침입니다. 아기를 돌보는 일은 대가 없이 누군가의 어린애 같은 면을 받아 주는 경험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다정함을 보이는 세상에서 산다는 건 멋진 일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어린애 같은 면에 조금 더 다정함을 보이는 세상에서 산다면 더욱 멋질 것이다.p.163
하지만 아이에게 쓴 다정함은 배우자에게 쓸 몫을 잘 남기지 않습니다. 빨래가 장 제목에 오를 만큼 일상의 잡일이 삶을 채웁니다. 여기서 탓은 상대를 떠나 시간과 체력으로 옮겨 가는 듯 보이지만, 쌓인 피로는 금세 다시 상대의 얼굴을 찾아갑니다.
4부 외도: 탓이 제도로 번질 때
라비는 베를린 출장에서 호텔 바에서 만난 로렌과 하룻밤을 보냅니다. 소설의 재미는 그 뒤에 있습니다. 작가는 찬성론과 반대론이라는 장 제목을 붙여 그의 머릿속 재판을 그대로 중계합니다.
찬성론 쪽 라비는 눈부신 논객입니다. 결혼의 소유욕을 비판하며 자기 행동을 자유의 문제로 끌어올립니다. 해설자는 그가 반론을 알면서도 재빠르게 피한다고 짚어 줍니다. 집에 돌아온 그는 죄책감에 지나치게 친절해지고, 착한 아내가 원망스러워집니다.
반대론에 이르면 작가의 결론이 나옵니다. 사람은 안정과 모험이라는 정반대의 두 욕망으로 움직이고, 어느 쪽을 골라도 값을 치러야 합니다. 라비가 찾던 해법은 애초에 없었다는 뜻입니다.

외도 장면보다 그 뒤의 자기변명이 더 볼만해요. 논리가 그럴듯할수록 위험하다는 걸 작가가 실시간으로 보여 주거든요.
5부 낭만주의를 넘어서: 화살을 내려놓기
큰 다툼 끝에 두 사람은 부부 상담을 받습니다. 애착 이론이 여기서 제목으로 등장합니다. 라비는 불안한 쪽, 커스틴은 회피하는 쪽으로 읽힙니다. 앞의 토라짐과 다툼이 두 사람의 어린 시절과 이어지고, 첫 부분에 깔아 둔 부모의 부재가 여기서 쓰입니다.
그렇다고 탓이 부모에게 옮겨 가지는 않습니다. 소설이 닿는 곳은 누구나 약간 잘못된 사람이고, 상대를 다 이해할 수도 다 이해받을 수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작가는 이를 낭만적 비관주의라고 부릅니다. 기대를 낮추라는 말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다정함에 대한 요구입니다.
결혼은 ‘어지간히 좋은’ 결혼만 있을 수 있다.p.279
탓의 지도
| 부 | 탓이 향하는 곳 | 장면 | 드러나는 착각 |
|---|---|---|---|
| 1부 | 없음 | 식당의 확신 | 모르는 사람을 안다고 믿습니다 |
| 2부 | 상대 | 이케아, 토라짐 |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합니다 |
| 3부 | 피로와 집안일 | 아기, 빨래 | 지친 것을 식은 것으로 봅니다 |
| 4부 | 결혼 제도 | 베를린, 찬반 논쟁 | 대가 없는 해법이 있다고 봅니다 |
| 5부 | 탓 자체를 내려놓음 | 상담실 | 서로가 온전할 수 있다고 믿어 왔습니다 |
왜 이렇게 쓰였는가
소설은 두 겹입니다. 라비와 커스틴의 이야기 사이사이에 해설자의 짧은 에세이가 끼어듭니다. 두 사람은 그 순간을 모르는 채 살고, 독자는 해설을 듣습니다. 드 보통이 소설을 사랑을 말하기 좋은 형식으로 꼽은 까닭도 인물의 안과 밖을 오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날을 미리 말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결혼 소설의 궁금증은 이 부부가 헤어질까에 쏠리기 쉬운데, 작가는 그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립니다. 그래서 읽는 사람은 자기 결혼의 어제 저녁을 대조하게 됩니다.
약점도 여기서 나옵니다. 설명이 많아 소설이 아니라 인물을 빌린 자기계발서 같다는 평이 서평에 나옵니다. 라비 쪽 내면이 훨씬 길게 그려져 커스틴은 끝까지 조금 덜 보입니다.
외도 합리화의 표현이 노골적이어서 불편해하는 독자도 있을 만합니다. 독자 리뷰에서는 결혼 후의 사소한 심리를 그대로 옮겨 놓아 공감했다는 반응이 눈에 띕니다.
같이 생각해 볼 질문
- 요즘 내 불만의 화살은 어디를 향하고 있나요? 상대, 아이, 일, 결혼 자체 가운데 어느 칸인가요?
- 나의 토라짐은 무엇을 말하지 않은 채 기다리는 것인가요? 말로 옮기면 어떤 문장이 될까요?
- 내 쪽의 다소 제정신 아닌 면 하나를 상대에게 먼저 인정한다면, 무엇을 꼽겠어요?
결말까지 읽기 (내용을 밝힙니다)
결혼한 지 16년쯤 뒤, 소설의 맨 끝에 라비는 비로소 자기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낍니다. 작가는 그 근거를 목록처럼 적습니다. 나도 온전치 않다는 인정, 상대가 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받아들임, 사랑받기보다 사랑하기를 배우는 일 같은 항목들입니다.
마지막에는 커스틴의 생일을 맞아 두 사람이 호텔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아이들과 함께합니다. 큰 화해의 장면은 없습니다. 서로에게 실망한 채로 다시 고르는 두 사람의 모습으로 끝납니다. 그들의 사랑이 낫게 되었다기보다 사랑의 뜻이 달라진 것입니다.
이런 분이, 이런 상황에서 읽으면 좋습니다
- 별일 아닌 것으로 싸우고 나면 허탈한 부부
이케아 컵과 토라짐 장면이 그런 다툼을 소설로 보여 줍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며 웃을 수 있습니다.
- 결혼을 앞두고 현실을 미리 보고 싶은 연인
결혼의 긴 과정을 다섯 단계로 미리 따라가 볼 수 있습니다. 환상을 깨면서도 다정함으로 끝내는 쪽입니다.
- 자기계발서보다 이야기로 관계를 생각하고 싶은 독자
인물의 삶에 해설이 곁들여 있어 조언이 이야기 안에서 들립니다. 설명이 많은 형식은 호불호가 있습니다.
읽고 나면 기대할 수 있는 것
- 내 불만이 상대를 향한 것인지 피로를 향한 것인지 구분해 보게 됩니다
- 토라짐을 말로 옮길 문장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 한 사람이 내 모든 것일 수 없다는 생각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 결혼과 외도 이야기를 함께 나눌 소재가 생깁니다
이 글은 책 소개, 목차, 책 속 발췌, 출판사 서평, 공개된 독자 리뷰와 널리 알려진 내용을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정리했습니다. 저자·출판사와 무관한 개인 해설입니다. 작성 기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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